연필로 고래를 잡자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은, 제목이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도서관에서 익히 봤던 책이었던지라 그 책의 저자라기에 어쩐지 익숙했다. 사실 정말 제목이 좋지않은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니. 이 책도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때마침 렛츠리뷰에 올라와있길래 처음 신청해보았다. 그런데 정말 당첨될줄이야! ;ㅇ; 정말 기뻤지만 사실 당첨되면 뭔가 연락이 오는건가-라고 생각했기에 책이 배달된것도 모르고 택배를 받으신 엄마가  한켠에 고이 쌓아두신것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발견하고 나는 정말 깜짝놀랐다;;..라는 것은 리뷰가 늦은 것에 대한 변으로, 이쯤해두고 ㅜ_ㅜ....

어쨌든, 나름 국문학도, 나름 작가지망생인지라 창작에 관한 책을 그간 나름대로 조금은 읽어봤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스티븐 킹 아저씨의 '유혹하는 글쓰기', 제목부터 좀 딱딱했던 '현대소설작법',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그리고 좀 '실용적으로' 해보려고 읽었던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20가지 플롯'... 잠시 들춰봤던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 등등.

그리고.... 꼭 '렛츠리뷰'라 그런게 아니라 (..) 이번에 읽었던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는, 처음엔'아니 이런 책이 다있어?!'랄까, 무척 독특하다는 느낌이었지만 다 읽고 나자 그러면서도 내가 읽었던 책들의 장점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스티븐 킹 아저씨의 훌륭한 입담으로 개인사를 늘어놓아 그 서사적인 이야기속에 작가의 소설관도 묻어나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서 술술 읽어내려갔고, 특히 글쓰기에 관한 부분에서는 예시를 많이 들어주어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당장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유쾌함이 마지막 장을 덮으면 느껴져서 좋았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는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가 참선을 생활화하고 있는 작가인지라, 글 이전의 자기 내면, 마음을 강조했다. 글쓰기 자체가 삶에 대한 깨달음이고 우주와의 만남이라는 내용은, '플롯은 어찌짜고 문장은 어찌써라'가 아닌 글쓰기 '마인드'자체를 제시해주었다. 심지어 글은 쓰고 있는 행위를 하는 우리 자신을 통하는 것일 뿐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까지도 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 아무튼.

이번에 읽은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는 딱 이 두 책의 장점 플러스 알파라는 느낌일까?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의 도입문에서 작가는 중요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그리고 '소설가는 소설쓰는 방법을 자기 혼자서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라고. 사실 소설 쓰는 법을 알고 싶어 책을 산 사람에게 도입부부터 저런 이야기는 무지 새삼스럽기도 하고, 참 뭐랄까, 알면서도 또 속았어-라는 느낌이랄까,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쩌란 말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소설가'가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왜 어떤 소설은 재미있고 어떤 소설은 형편없는지 궁금해서 온갖 소설을 읽고 또 읽고 분석해보고 따라해보고 다른 소설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탐구를 거친 것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싶어하는 미래의 소설가들에게 '소설을 쓰는'법 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찾는'방법을 가르쳐주고자 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이 책은 확실히 선문답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아니 당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즐기라'고 하질 않나 '쓰기전에 고래 다리가 몇 개 인지 조사해'보라고 하지 않나, '바보가 되라고 하질 않나'. 뭐 여러가지 공을 자꾸 던져주며 볼을 잡으라는데 아무튼 어떻게 하라는건지 원.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우선 우리가 쓰고 싶어하는 '문학',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까',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좋은 소설을 쓰려면 어떤 소설들을 읽고 연습해야할까', 등등 의 기본적인 내용들은 모두 충실히 다루고 있다.

예시도 무척 풍부해서,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예로 들었던 에리히 캐스트너의 이야기라던가 '아기처럼 흉내내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좋은 소설들을 읽고 흉내내본다-라는 부분과 구체적인 예시(레이몬드 챈들러와 무라카미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와 저자 자신)는 이 전에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듯한(?!) 구체적인 내용들로, 사실 무척 감탄했다.
 
특히 '이야기가 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란 얘기는 처음듣는 것도 아니지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메시지는 무척 와닿으면서도 구체적이지 못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그때마다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막연하기도 했었는데 '에밀과 탐정들'의 대작가가 소설을 구상하고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보라'고 가르쳐주고 있으니 어찌나 친절한지. 이것도 사실 괴상하다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직접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거 아닌가? (그래서 나도 이젠 소설이 막히면 책상밑에 거꾸로 누워볼 생각이다.)

게다가 마지막엔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독자에게 더욱 좋은 가이드라인이겠지만) 읽어보고 흉내내볼만한 가치가 있는 북 가이드까지 첨부하고 있어, 이만하면 뭔가 잡히는 것이 있달까, 당장 책상앞에 앉아 따라해볼만하다.

그러면서도 초등학생 들에게 소설을 가르쳤던 경험을 통해 소설과 문학의 본질을 어른인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해주고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서 읽고 또 읽었던 부분중 하나. ㅜ_ㅜb)

막 떠오른 이야기는 얻어맞은 개와 같으니(오, 어찌 이런 표현을!) 섣불리 써대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 달래고 얼르며 '소설과 놀아주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소설들이 얼마나 구역질나고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것이든 고개 돌리지 말고 '상대가 던져준 공에 본능적으로 몸을 던지'고 이쪽에서도 먼저 다가가라고, 즉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받아들이라고 조언하며 작가로서 가져야하는 '마인드'를 심어주는 데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덮었더니, 그동안 생각만 하고 직접 글로 옮기지 못해 초조해했던 '꺼리'들에 대한 조바심도 사라졌고(아니 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즐기라고 선생님이 말했으니까)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따라하게 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사라졌고 (자꾸 따라해봐야한다고 선생님이 말했으니까) 아무튼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도 얼른 뭔가를 쓰고싶다!는 기분이 충만해져버렸다. (물론 뭐 자기 합리화를 위한 책은 아니지만.)

'글 못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교실'이라는 카피가 책 표지에 적혀있는데, 그런대로 맞은 셈이다. (아,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그 자체로 정말 '즐겁다'. 내용은 몇번씩 곱씹어야 할 것 같은데 작가의 속사포같은 입담이 끝내줘서 자꾸자꾸 책장을 내달리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마지막에서는 소설과 시 등 다른 문학작품들과의 차이에까지 영역을 뻗어나가는데, 서문에서도 던지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소설'만이 가진 그 미래성, 대우주, 즉 '일반적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소설, 베스트셀러 이외의 넓은 의미에서의 소설'을 지지하는 이 작가의 마인드는 정말 뭐랄까, 존경스러웠다.

이 작가가 많은 소설가 지망생에게 쓰라고 권유하고 싶은, 아니 그가 읽고 싶은 소설은 '소설가입네'하고 대충 눈속임으로 쓴 소설이 아닌 각자가 가진 혼자만의 전용길로 마지막까지 더듬어가며 쓰는 소설.


'지금 이곳에 있는 소설은 우리 인간의 한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쓰게 될 새로운 소설은 그 한계 너머에 있는 인간을 그려낼 것입니다.' (20p)

라는 생각을 하는 소설가는, 멋진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신의 후배들에게도 좋은 길을 가르쳐주겠지. 믿고 따라가 볼까-하고.

훌륭한 마인드와 나름대로의 비기(?)를 전수받았으니 늘 '음 제목 좋군'하고 돌아섰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얼른 빌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따라하고 싶은 작가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혹시 의외로 그렇지 않게더라도, 이 책만큼은 선생님으로 모시고 여러번 읽고 또 읽어 나만의 길 끝에 있는 소설을 완성하고 싶다. 저 벽, 한계 너머에 있는 인간을 그려낼 소설을.

렛츠리뷰
by 슬라임군 | 2008/05/07 01:31 | 읽은것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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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몽랑님에 의해 도서가격비교 와비에서 베스트 리뷰로 ..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은, 제목이 인상적이기 때문인지, 도서관에서 익히 봤던 책이었던지라 그 책의 저자라기에 어쩐지 익숙했다. 사실 정말 제목이 좋지않은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니. 이 책도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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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칸 at 2008/05/07 10:02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군요. :)
리뷰를 보고 어떤 것을 보고싶어진다는 건, 그 리뷰 자체도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얘기지요. ^^ 고래는 어떨지 몰라도, 이미 미칸 한 마리는 충분히 잡으셨습니다///
Commented by 젼이 at 2008/05/08 17:30
와, 재미있겠는걸요! +ㅁ+
저도 한 번 읽어 봐야 겠습니다.. 표현이 재미있을것 같아요...
초등학생 한테 가르쳤던 경험 부분 읽고 싶네요... ^_^/
Commented by 슬라임군 at 2008/05/10 23:05
미칸님, 꺄, 파닥파닥 싱싱한 미칸님 한 마리가 여기+ㅅ+ (....;;; 실례했습니다;;) 아웅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그만 흥분; 정말 감사합니다. 뭔가 렛츠리뷰에 올리는 거라서(?) 필사적으로 썼..ㅜ_ㅜ 는데 좋게 봐주셨다니 정말 너무 기쁘네요! 이 책 정말 재밌답니다.... 언제 기회 있으시면 한번 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ㅇ^//

젼이님, 아아, 젼이님이라면 굉장히 좋아하실 것 같은 책이네요 >_< 그 초등학생 부분 정말 좋답니다. 애들이란....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나봐요. ㅜㅜ (인터넷하는 초딩;은 무서운데 말이죠...) 언제 한번 읽어보시와요 ^///^
Commented by 아기사자 at 2008/05/12 17:40
안그래도 렛츠리뷰 당첨자 확인하다가 너 있는거 보고 슬몃 웃었었는데...
난 당첨 안시켜주더라구. 그 전에 한번 리뷰 안 썼더니 안해주나봐.꺼이꺼이 잘못했어요ㅠㅠ
Commented by 슬라임군 at 2008/05/18 22:28
아기사자언니, 어엇 그랬구나~ 언니도 신청했던거? 이 책 되게 잼나더라 ㅜㅜ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꼭 봐! 오, 리뷰 안쓰면 선정 안해주는건가 역시;; 슬프다;; 그럴까봐 진짜 열심히 썼다는 ㅜㅜ 숙제하는 기분으로;;; 결국 시간 살짝 오바했긴 했는데.. 웅얼. ㅜㅜ 암튼.. 담엔 언니도 꼭 될껴! 렛츠리뷰 제도 되게 좋은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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