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또 부질없이 시작해보는 꼭 리뷰하자 운동;;)
스폰지하우스에서 절찬리(!!) 상영중이자, 2008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빛나는
'카운터페이터'.
* 전체적으로 스포일러가 조금 있을지도 모릅니다. 'ㅇ';;;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몰랐다. 보고 싶다 / 안보고 싶다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도 없었다. 다만 어디선가얼핏얼핏 보고 들었던 이 영화의 이미지는 '위조지폐'와 '천재'라는 두 단어 뿐이었기에, 그 단어들로 대략 천재적이지만 약간비뚤어진 방법으로 그재능을 이용하는(?) 예술가들의 인생을 그린 영화들을 떠올려보았으나, 짐작이었을 뿐 무슨내용일지는 별로 감이오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제서야 뒷북을 두들기며 '아임낫데어'를 볼까 하고 찾아갔던 스폰지하우스에서 아임낫데어가 어마어마하게축소상영중임을 목도하고 음, 온김에 괜찮은것 같으니 볼까 하고 선택한 것이 이 영화였다. '타인의 삶' 제작진! 2008년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이라는 것도 나름 괜찮은 유혹이었고.
그래서 별 정보없이 보게되었던 영화는, 의외로 나치시대 유태인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영화였다. ;; 깜짝이야. (..)
그리고 그 위조지폐이야기는 다른게 아니라,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베른하트 작전-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위조파운드와 위조 달러를 잔뜩 만들어내서 영국과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켜 버리자!는 목적으로 계획된 (막판에 세력이 기울면서는군사자금이 모자랐겠으니 그 용도도 있었겠고) 사상 최대의 위폐 음모..를 중심으로, 죽기 싫으면 목숨을 걸고 최고의위조지폐;;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유태인 기술자들의 이야기, 그들의 인간적인 갈등과 기타등등을 그린 영화다.
수용소 장면들이 꽤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개인적으론 2년전에 여행에서 들렀던 뮌헨 근처의 다카우 수용소의 모습이 막생각나기도 하고, 역시 인간은 무서워..라는 생각을 하며 몰입하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이 워낙 위조의 황제인 관계로 얘기의 양상은 우리가 익히 상상해왔던 수용소에서 고문받는 유태인..이 아니라 당근과 채찍을 손에쥐고 자신들을 쥐락펴락하는 독일인과 고통받는 유태인들의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계급이 된 주인공(들)의 고뇌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신선한, 재미있는 부분이랄까.
아무래도 '타인의 삶' 제작진..(제작사만 같은것 같긴 하지만;;)이라고 하니 비교를 좀 하게 되는데, 2차대전 주범의 역사에다 분단까정, 독일의 현대사도 정말이지 대단한 사건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에 일단 좀 뭔가 맘이 복잡해졌고(..) 한편으론 그걸 또 이렇게 잘 예술작품(?) 영화라는 매체로 승화시키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만치 않게 역사적 생채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잘 만든 영화들이 나와줬음 좋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내가 뭐라고 이리 영화계 걱정을;;..<< )
여튼 각설하고, 뭐랄까, 이 영화도 무척 재미있게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삶'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무척 러프하고도 무모한;; 비유를 감히 해보자면, '타인의 삶'은 '웰컴투 동막골'인 반면 '카운터페이터'는 '태극기 휘날리며'이기때문.....이랄까. orz
그 권력의 주체가 누구이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목숨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체제에 반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양심과 신변의 위협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꾸역꾸역 살아남는 내용이라는 차원에서 '카운터페이터'와 '타인의 삶'은 무척닮아있다.
하지만 '타인의 삶'같은 경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고, 분명 있었을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이이야기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측면에서 본 역사이며 혹은 말할 수 없었던 역사이기도 하다. 영화의 초점은 주인공이 처했던 상황의 역사적 진실성과 무게감보다는 그 틀 속에 갇혔던 한 개인일 뿐인 주인공이 그런 위대한(!) 행위를 했다는 것에 있다.
주인공 비즐러와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주인공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무척 현실적이지 않은, 드라마틱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냉철하던 감시관을 결국 바꿔버린 '자유'라는 것의 위대함을 새삼 알게되는 것은 덤!) 그러나 물론, 그 영웅적인 행위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독과 서독의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했을 때, 그 감동은 훨씬 더 배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렇기에 영화의 전개는 주인공 개인에 무척 타이트하게 집중되어있으며 그의 성격과 신념의 변화를 아주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관찰하고, 억압과 감시의 주체자로서 익숙해져있던 한 인간이 자유로운 인간을 엿보면서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그리고 그 인간의 변화가 어떻게 유의미한 인간성의 감동을 남기는지를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한 마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 상황안에 갇힌 비즐러라는 한 '인간'이며 '인간성', '인간본성'이 이 영화의 갈등을 해결하는 주된 열쇠가 된다.
반면 '카운터페이터'는 철저하게 '베른하트작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적 사실을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이다. 그 사건 뒤에 숨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유태인 죄수들의 갈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지 돋보기를 갖다댄 것일 뿐, 역사를 돌려본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아, 말빨이 딸리는 관계로 생각대로 표현이 잘.;;)
'타인의 삶'에서 '억압된 상황하에 각성된 한 인물의 위대한(?) 인간성', 즉 영웅적인 케이스-를 그려내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다면, '카운터페이터'에서는 '2차대전 베른하트 작전에 동원된 유태인 기술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 무게가 꽤 큰 파장으로 마음을 두드릴 수 밖에 없는, 어찌보면 좀 익숙한 형식의 감동을 관객에게 되새긴다. 그렇기에 두 영화는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카운터페이터'는 같은 상황에 처한 다양한 인물 군상을 마치 실험실에 넣고 관찰하듯이 보여준다. 물론 그중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주인공 소로비치이지만 그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들- 예를들어 독일군에게 붙어서 편하게 살아남고 싶은 심정과 수용소의 유태인들에게 느끼는 죄책감, 나치를 방해하기 위해 작업을 망쳐야 한다는 양심과 위조 예술가(?)로서 철저하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야심 등등 여러가지 심적 갈등들이, 소로비치 개인의 내면에서가 아니라 다양한 양상을 띄는 유태인 기술자동료들이 마치 각각 그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욕망의 역할극을 하듯 갈등을 빚으며 눈에 보이는 인물간의 갈등으로 치환해 보인다.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은밀한 거래로.
그리고 미약하기는 하지만 당근과 채찍을 손에 쥔 독일군 소령과 무작정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그 부하, 즉 독일군 인물들도 꽤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군국주의가 몰고온 비정상적인 수용소라는 공간과 그 중에서도 특별한, '베른하트작전'이라는 회색지대에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싸우는지, 혹은 완전히 자신을 버리는지, 혹은 갈등하는지, 혹은 도망치는지,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지 등등의 케이스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상황'이며 (소로비치 개인의 '변화'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영화의 거대한 결론과도 실은 연관이 없다. 즉 그는 수동적으로 역사의 흐름 속에 갇혔던 비극적인 인물일 뿐이다.) 관객에게 '당신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것인가'를 묻는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관객은 소로비치 개인에 대한 어떤 감정보다도 그를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어 결국 망가뜨린(?) 광기어린 역사를 되뇌며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그러니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돼'같은 생각을 하든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되짚어보고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서 그 많은 사건을 겪은 소로비치는 그때의 박력과 인간적인 모습들, 인정과 우정과, 혹은욕심 마저도 잃고 나무껍질이 되어버린 것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는다. 그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의 희생자의 한 사람이 되어 연민의 감정으로 쓸려나간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본 관객에게 남는 여운은 주인공 비즐러의 일견 초라해보이지만 알고보면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위대한 인간의 뒷 모습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은 어떻게 할것인가'를 묻지않고 대신에 '그 시대를 이렇게 버텨낸 사람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가 묻기도 전에 관객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지만 영웅적인 행위를 되뇌게 된다. 이런 이야기, 대체역사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희망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객은 말그대로 '냉랭'했던 냉전시대에 살아있던 인간성을 꿈꾸고그것을 통해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며 위로를 받는다.
2차대전시 수용소에 끌려갔던 천재 소로비치는 어쩌면 그 특수한 시간과 공간안에 갇혀있다면, 비즐러의 뒷모습은 시대를 초월한다. 장진이 우리나라에서도 '타인의 삶' 같은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코멘트한것은 (씨네21 13년 기념호에서) 그것을 증명한다.
개인적으로 '웰컴투 동막골'을 좋아하는 한국 영화를 이야기 할 때 늘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6.25 전쟁이라는 우리 역사의 상처를 무척이나 영화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화해시키는 그 멋진 발상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이 가져온 한 가족의 비극을 잘 그려냈고 감동을 주었지만 '사실'과 '비극'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하고 매력적인 소재이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묵직함을 전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타인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 가혹한 역사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극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뭐랄까, 과거에 대한 용서와 미래를 향한 용기를 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사실 이미 통일이 된 독일보다 아직 분단관계에 있는 우리나라의 관객에게 더 유효하지 않을까. 이렇게 좀 멀리가는 생각까지 해 보면서.
'카운터페이터'는 괜찮은 영화였고 꽤 재미있게 보았지만, 자꾸 '타인의 삶'과 비교하다 보니 그저 '좋은 영화'라는 긴 목록 중에 한 작품으로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것은 좀 아쉬운 점이긴 하다. 하지만 나치와 유태인 수용소라는 이분법적인 공간에서 그 사이의 제 3공간을 찾아내고 무척 드라마틱한 소재인 '위조지폐 작전'과 연결 시킨 것은 정말 재미있는 얘깃거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점점 더 격하게 각자의 신념을 주장함으로써 갈등이 고조되는 단계도 훌륭했고, 덕분에 이 비정상적인 구조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도 정말 손에 땀을 쥐고 보았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긴 글로 '카운터페이터'의 흠(?)을 잡으며 상상적 화해, 영웅 운운했던 것은, 역시 역사의 희생자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이 껄끄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로비치는, 사실 그렇게 큰 상처를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기꺼이 목도해야할 사실이기에,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탱고 선율을 배경으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춤추는 그의 모습을, 그래도 끌어안고, 오히려 축복해야 할 것이다.
PS 1. 영화 연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카운터페이터'는 무척 잘만든 영화다. (내가 쥐뿔아는것이 없기는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쓸데없는 대사없이 상황의 변화나 전진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능수능란해서 깔끔했고, 보고있는 관객의 감정은 고양시키면서도 화면 안의 인물들은 절대 오바;하지 않고 현실성을 지키며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정말 조마조마했다. ;; 특히 탁구치던 장면은 압권. 나중에 팜플렛을 보니 CF와 뮤직비디오 연출을 한 감독이라고. 역시나.
PS 2.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저 포스터가 너무 쌩뚱맞다는 생각에 미쳤는데 대충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에서 만든 포스터가 저것인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엄지를 들어주고 싶은 포스터는 바로 이것.
아아, 진정 강렬하지 않은가 ㅠ_ㅠ......... 전달력도 최고!!! ㅠㅅㅠb 우리나라 포스터도 이걸로 했으면 관객이 1.5배는 더 들었을지도....(억측)
PS 3. 스폰지 하우스의 과장님(..)을 아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그분과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 혹시 누가 공감안해주시려나.. (..) 개인적으로 주인공보다 눈여겨 봤던 인물은 사실
잘 안나왔지만 왼쪽에 옆 라인을 뽐내고 계신 남정네, 극중 이름은 '부르거'요, 배우 이름은 '오거스트 디엘'이라고. 아아, 수용소의 한 떨기 꽃미남♡이여(......) 게다가 감독님이 뭘 좀 아시는 듯..... 이런 캐릭터는 역시 외골수 반항아라야 제맛. :9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