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영악해진 그들의 불편한 진실, 밤과 낮 봤다영화


토요일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홍상수의 '밤과 낮'.




홍상수... 뭔가 미묘한 그 이름. (응?;) 나름 영화를 즐겨본다고 하면서도 사실 돌이켜보면 홍상수의 영화를 다 챙겨보지는 못했다. 관람한 리스트를 되짚어보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해변의 여인', 그리고 이번에 본 '밤과 낮' 정도.

다 뭐, 재미있게 봤는데, 홍상수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인간(특히 남자)의 속물성'의 가감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최근작 '해변의 여인'은 (감독입네 하는 살짝 나이롱 예술가인) 남자가 여자와 자기 위해 하는 짓들과 자고 나서 하는 짓들(..)을 가장 단순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홍상수 영화중 제일 대중적이랄까, 정말 '재밌'게, 이중적이고 속물적이지만 그래서 인간적인 인간들을 나름 유쾌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정말 키득거리면서 즐겁게 봤다. ;; 어우 웬일이야! 이러면서 으하항.

그래서 최근작 '밤과 낮'이 궁금했었는데 공사가다망해서;; 상영을 놓쳤던 터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작가를 만나다 특별전(?)으로 지난 토요일에 보고 왔다. 개인적으로 '밤과 낮' 광고지에 써있던 내용- 그니까, 같은 순간에 빠리는 밤이고 서울은 낮이라는 그것 때문에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읽고서, 그런 재미있는 시차가 요즘 관심있는 테마였기에 그 부분을 좀 기대했는데 의외로 그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

암튼, 이번 영화에서도 한 남자가 나오고 (공교롭게도 '해변의 여인'때와 비슷하게 타지로 떠난 남성) 주변의 여자들과 얽히며 특히 한 여자와 자기 위해 (..)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동안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지만 오직 남녀상열지사 그 하나로 풀어졌던, 무척 단순명료;했던 '해변의 여인'때 보다는 뭔가 의미있어 보이는 장면이나 설정도 많아졌고 하튼 그랬다.

내가 영화에 박식하고 특히 홍상수영화에 조예가 깊다면 뭔가 영화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할 얘기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지한 관계로(..) 그것보다는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남녀관계, 그 '남자들'에 대한 얘기를 슬쩍 해보자면.

영화 '밤과 낮'의 주인공은 더 영악해졌다. 무슨 뜻이냐면, '해변의 여인'에서 정말 '어우야...' 소리가 나올 정도로 노골적이고 단순했던 김승우 캐릭터보다 '밤과 낮'에서 김영호가 연기한 성남은 좀더 복잡한 캐릭터라는 뜻이다. 솔직히 이전 영화들은 좀 어려웠고 기억도 가물가물하기에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다 보고 음...? 이랬던 기억이;;; ) 모르겠지만 김승우가 예외적 인물이고 이번 영화의 캐릭터가 홍상수가 그동안 써왔던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마다 감탄하는 것은 남자라는 생물의 단순함;;;과 일관성;;인데, 특히 '알렉스'같은 캐릭터가 유행하고 '토이'나 '성시경'노래 가사를 모두 외고다니는 요즘 세상에 참, '니들 다 꿈 깨, 남자는 이런거야!'라고 휙 던지는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솔직한 것이 쉬크?해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해서 재미있다. (물론 나에겐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진실...orz'같은 느낌이지만. 세상에 반이나 있는 남자들이 정말 저렇단 말이니~? 어머나 세상에!)

특히 그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재미있는데, '해변의 여인'에서도 결국 뭔가 후련한듯 떠나는 고현정의 모습은 마치 김승우 분 속물 예술가의 찌질함(..)에 날려주는 미소 인것 같아 뒷맛이 깔끔했었다. :9 ;;

그런데 항상 조금씩 마음에 걸렸던 것은, (최소한 최근 두 작품에서) 그런 '찌질'하고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런 남자들에게 영화속에 나오는 똑똑하고 매력있는 여자들은 다 몸을 허락하고 만다는 것이었고, 차후 그 남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한채 엄하게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자학을 하거나 유산을 하거나;;;;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남자들에게 항상 여자들은 넘어가며 결국 그렇게 그들에게 당하(?)고 참고 마는가.

'밤과 낮'의 주인공이 영악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가 영악하지 않게 묘사되어있기 때문이다. '해변의 여인'에서 김승우는 온갖 사탕발림과 치사한 거짓말들, 치사한 짓거리들을 해가며 두 여자 사이를 오간다. 그는 '말이 많다.' 그래서 훤히 보인다. 아, 지금 저 사람은 저 여자랑 그냥 한번 하고 싶은 거구나.

하지만 '밤과 낮'의 김영호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다. 그는 김승우보다 과묵하고, 오히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이다. 김승우처럼 대놓고 속물적인 모습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같이 자자고 달려드는;; 10년전의 여자친구를 성경을 읽어주며 뿌리치기도 한다. 도덕의 핑계를 대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며, 에이, 사실은 그 여자에게 성적 매력을 못느껴서 그런거겠지-라고, 홍상수적 인물에 익숙해진 관객은 생각하지만 그래도 좀 찝찝하기도 하다. 음, 혹시 정말로?

김승우는 나레이션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짓거리들에서 그의 속마음이 지나치게 '티가 날' 뿐이다. 하지만 '밤과 낮'의 인물은 말은 어눌하게 하는 대신 나레이션을 한다. 그녀에게 직접 어떤 액션을 하기 전에, 나레이션으로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것은 (속물이 아니라고 믿는) 우리도 흔히 겪는 사랑의 시작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건지, 아니면 정말 그 말 그 자체의 의미뿐으로, (타국에 떨어져있는 몸과 마음이 외로운 상황에) '예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헷갈리게 한다.



아니, 홍상수 영화라면 당연히 한번 자고 싶은 껄떡;;이라는건 사전에 익스큐즈 된거 아닙니까?!;


오히려 속마음을 들려주는 이 인물이 관객을 알쏭달쏭하게 만든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게다가 무척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유학생으로 보였던 그 여자도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런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어쨌든 자기 혼자서는 무척 정서적으로 힘들 그 여자에게 '정말 잘'하는 그 남자를 보면서 (다른 관객은 어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헷갈렸다.'

하지만 결국 그래서, 이 남자는 나에게 더 '기분 나쁜' 남자로 기억 될 것 같다. 김승우가 훤히 보이는 그 치사함을 모두 들키고나서 여자 주인공에게 쓴 웃음 한번 짓게하는 남자로 지나가는 희극화된 캐릭터라면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자들에게 똑같은 멘트,'사랑해'를 연발하며 상처를 심고 그것에 대한 아무런 직접적인 비난도 받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에 '진실인것 처럼' 행동하는 이 남자의 행동은 사실 조금 설득력이 있기에, (아니, 설득력 있게 그려졌기에) 그냥 너무 스무스하게 넘어가버린다.

사실 꼭 파리 유학생 박은혜에게 그런 뭔가 정신병리학적인 ;;; 설정을 심어줘야 했을까? '쟤도 그렇게 멀쩡한 애는 아니니까, 아니 좀 이상한데가 있는 애니까 그냥 좀 만났다가 헤어지면 어때'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관객에게 심어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홍상수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남자'의 리얼한 본모습일까? 김승우는 웃어보자고 만든 좀 극대화 시킨 캐릭터였고, '밤과 낮'의 성남이 정말 우리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남자들의 속사정인 것은 아닐까? (성남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남성'이다. 오호라.) 

그냥 한줄 요약으로 들으면 (스포일러 주의 : 드래그 하시오 '얘, 글쎄 유부남 누구누구가 빠리가서 애인만들어서 놀고 버리고 들어왔대!') 절대 설득력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비난받아야 마땅할 인물의 자질구레한 일상과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묘~하게 '남자들이 다 저렇지 에라이 나쁜것들'하고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그 점이, 이 영화의 뒷맛이 조금 껄끄러운 이유이다.

물론 영화는 그냥 있을 수도 있는 어떤 현실을 그냥 '보여준'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조적인 것이든 리얼한 것이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모든 남자들이 전부 다 속에는 저런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너무 사실적이기에 '저런 남자들이 있고(아니, 대부분이고) 저런 남자들에게 당하는 저런 여자들의 이런 얘기도 있다. 어때 재밌지?'까지 보여주는 이 영화가, '당신도 저런 남자를 만난다면? 남자는 다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라!'로 잘못 치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무서워졌다.

재밌게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남자 여자 따지며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온통 희생자로만 묘사되는 여성들을 보며 '밤과 낮'에서 어쩔 수 없이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느꼈다. 최소한 마지막의 꿈에서, 늘 차분하고 듬직하고 '남자다운' 성남의 머릿속에 사실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대하고 싶어하는가)가 드러나면서 이 영화의 '자조적인'? 분위기를 조금은 느꼈지만 그것조차 조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나쁜놈(..)인 그는 '잘할게'라는 상투적인 말로 부인과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살것 처럼 끝났으니까. (물론 그 아이러니 자체가 더 여러가지의 의미와 강렬한 느낌을 준다는 것은 인정한다.) 수많은 유부남들의 '잘할게'가 죄다 의심되는 순간이다.

GV시간에 홍상수감독은 영화가 감독 자신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에 백번 동의하는 바이며, 영화속의 '성남'은 그렇게 일상적이고 나름 절실한 마음으로 결과적으로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다니는 남자들에 대한 '현실의 반영'일 뿐, 메시지는 관객이 알아서 받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주인공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했듯이, 단순하지 않은, 무척 복잡한 여러가지 에피소드에서 보인 '성남'의 모습은 나에게도 꼭 이런 나쁜놈의 시키;말고도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너무 설득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 보고 나니까 괘씸하더라니까!)

물론 영화가 도덕교과서일 필요도 없고, 여자들에게 상처준 놈들은 다 망해야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를 보고나면 '남자들은 다 저런가봐'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 싫다. 그것은 곧 남자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평가하는 대상'으로 밖에 안 보일 여성으로서의 나의 정체성 또한 '원래 그런 것'으로 인정해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아닌지라 남자의 본성에 대해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나 또한 남녀관계에 뭔가 단지 성적인 것 뿐만이 아닌 다른게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가 심어준 사랑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가 원래 '그럴 수'는 있어도 '그러지 않도록' 노력도 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 '원래 그렇'다고 다 참아줘야 되는건가? ;;

'해변의 여인'은 여자들과 함께 히히덕거리며 그런 남자들을 비웃는 것 같은 시선의 영화였다면, '밤과 낮'은 남자들끼리, 좀 쑥쓰럽고 겸연쩍지만 '남자가 뭐 그럴 때도 있지'하며 자기들끼리 넘어가는 술자리 대화를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홍상수 감독은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까진 안했나? 암튼;) 중요한 화두라고 했는데, 나는 홍상수 영화를 볼 때마다 '남자는 대체 어떤 존재인건가';;; 가 궁금하고, 때론 실망스럽고 때론 혼란스럽다. 우리는 언제쯤 서로에 대해서 명쾌하게 알게 될까? 아니, 오히려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되는 것은 재앙일까, 축복일까?


PS. 하지만, 아무튼 홍상수감독의 일상 묘사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쩜 그렇게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잘 잡아내는지. 코메디 영화도 아닌데, 정말 웃기는 장면이 많았다. ; 헉헉;

PS 2.

하지만 '코..코메디 영화인가?'라고 순간 생각했던 캐스팅.




언제 나오나 궁금했던 이선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시라!!! 전미가 울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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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Borges 2008/07/14 01:56 # 답글

    ㅋㅋㅋㅋ 바로위에 올라와 있는 저 사진 보고 피식했습니다. ^^
    저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하셨던건 같군요 ^^;;

    저도 이 영화를 놓쳐버리는 바람에 감독님과의 대화도 할수 있었고 참 좋았던거 같아요!ㅋㅋ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다시 한번 다~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군요 ^^
  • 슬라임군 2008/07/14 20:07 #

    와, 반갑습니다 Borges님 ^^ 정말 저런 이선균은 살다살다 처음본;;;(?!) 하여튼 절대 잊을 수 없을것 같아요 ㅠㅅㅠ.. 요즘은 너무 만인의 연인;;이 되어 시들해졌지만 한때 정~말 좋아했는데!!! 그분의 최대매력을 이런식으로 이용하는 홍상수감독님의 센스 ^^ (좀 다른의미지만;;) 역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우후후; 저도 그 영화 놓친게 쭉 마음에 걸렸었는데 좋은 기회로 보게 되어서 기쁘더라구요 ^^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람이 2008/07/15 20:15 # 답글

    '전미가 울었다' 와하하하 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
  • 슬라임군 2008/07/15 23:15 #

    와하하하! 슬쩍 링크타고 가보았는데 우람이님도 그날 홍감독님의 영화를 같은 공간에서 관람한 관객이시군요! 이렇게 넷상에서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우후훗. 그 GV는 무려 8시까지 계속되었답니다;; 어찌나 길던지. 뭔가 달변가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것보단 오히려 '눌변';;가에 가깝던 홍상수 감독님. ㄷㄷ 어쨌든 읽어주셔서,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 Borges 2008/07/16 23:08 # 답글

    눌변가 ㅋㅋㅋ 그렇지만 그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는 후덜덜;;;;;
  • 슬라임군 2008/07/17 23:55 #

    으히히 하긴 그래요 정말;; 그 GV중간에 어떤 관객분이 '생각을 좀 더 하고 찍으셨으면 좋겠다'고 하신말을 기억해 두셨다가 나중에 다른 답변에서 터뜨(..)리실 때 저같은 나노마인드의 소유자면 정말 울면서 뛰쳐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 후덜덜.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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