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밑에 저런 글을 썼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나리오가 안써져서 땅을 파고 내려가고 내려가고 하면서 어제는 대략 우주를 보고 온 느낌입니다.
작은 방과 그 안의 고타츠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자!고 한게 벌써 일주일이건만 영 진도가 안나가서 되도 않게 스타벅스에서 쓰면 잘써질까라는 생각에 일단 스타벅스로 달려가 자리를 잡고 드립커피 Tall을 마셨는데 카페인 과다 섭취때문인지 심장이 벌렁벌렁하여 소득없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돌아오는 길이 참 길고도 춥고도 힘들더랍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봤어요. 아, 지금은 내가 정말 정신적인 핀치상태니까 집에 도착하거든 나를 쉴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하자/보자/읽자/듣자!
근데 막상, 그렇다면 뭘해야할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마땅한게 떠오르지 않더군요. 보는것만으로도 읽는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들이 옛날에는 많았던것 같은데, 내가 왜 이렇게 된거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어쨌든 스스로 뭔가를 만들려고 궁리하고 있는 단계이니 뭘봐도 '공부'라는 강박감이 강해진건 아닌가. 좋아하는 것일수록 한편으론 이런 대단한건 난 절대 못만들텐데! 라는 자괴감이 따라오는건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 최근의 문화생활에 대해 되짚어보았습니다.
저는 원래 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를 외치며 뭐 하나에 몰두해있을 때 기력이 MAX로 나오는 스타일인데, 최근 1년간 그렇게까지 기력이 뻗치게 좋아한게 별로 없더라구요. 꼽아보자니 Skins 정도일까...(하긴 이건 진짜 물건이긴 했음ㅠㅠ) 이젠 아련한 거탑과 메대공이 저에게 줬던 즐거움과 활력은 언제적 얘기던가!
요즘 본 영화 책 등등, 냉정하게 분석해보자면 의무감에 본게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를 차츰;; 먹어가다보니 계속 이 꿈을 유지하려면 개인적으로라도 작은 '성과'를 내야할것 같은데, 그러기 위해선 어째야 할까 하는 부담이 슬슬 저도 모르게 커졌나봅니다.
그도 그럴듯 '죽기전에 봐야할 xxx'같은 가이드들이 산적하고, 주변엔 훌륭하고도 부지런한 분들뿐이고(내게 그분들은 삼라만상을 다 알고 계신것 같을뿐이고), 글이든 영화든 뭐든 괜찮은 결과물을 내보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한, 남들이 좋다는 그런것들을 안보면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고, 아니 내가 잘 안되는게 그런걸 안봐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복잡다단한 심리적 과정에 의해 나도 친구 누구누구처럼 무려 '영화사에서 중요했던 작품들은 다 보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할것 같은데 난 게으르고 게으르고 사실 그것들을 공부하는게 재미있을거 같지는 않아, 심지어 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니 물론 의무감에 본 것들 중에 정말 재미있고 좋은것도 있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라던가.) 대부분은 저를 점점 더 괴롭게만 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슬램덩크를 내가 왜 좋아했을까? 물론 몇 가지의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냥 무턱대고 좋아했던 그 마음, 누가 좋다 어떻다 말하는걸 듣기 전에 마음속으로부터 '너무 좋아!!!'라는 것을 느끼고, 막 몰두했던 그때의 기분이, 요즘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사라져버린것 같아요.
아무래도 스스로의 소화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습니다.
어느새 문화적 취향이 개인을 대변하는 시대라고,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해왔던것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쫓아가려고 했지요, 센스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정도는 알아야지! 라고 조금이라도 생각될만한 것들을.
그러다보니 조그만 지식으로 아는척했고, 심지어 안본것에 대해서도 본것처럼 얘기하기도 했어요. @_@... 그래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이제 그러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타인의 추천과 공신력있는 평가를 받은 작품을 보는게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게 내 취향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의 문제에 대해 더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렵니다!!
사실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 제가 본건 원령공주랑 토토로 뿐이라고!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것'을 아직도 안봤다고!! 에 또, 찰리 채플린 영화를 제대로 본게 하나도 없다고!! 라디오 헤드 노래중에 잘 알고 좋아하는건 creep뿐이라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대로 본게 하나도 없다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도 본게 없다고!! '위대한 개츠비'를 아직도 안읽었다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본건 하나 TV를 들여놨던 작년이었고 그나마도 결말은 하나TV에서 짤리는 바람에 못봤다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혹은 형편없다고 말하는 몇 가지들에 대해 반대로 생각했으면서 아닌척 한 적이 있다고!! 말이죠.
사실 저는 이렇게 아직 알아갈 것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동안 본척, 아는척했다는게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이제라도 이런 제 모습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정신이 건강치 못한 까닭에 그간 제가 지적허영을 떨었던 많은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orz 앞으론 그러지 않겠어요. 카레카노의 유키노를 전 사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암튼, 근데 이게 시나리오를 쓰는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라고 하신다면 딱히 할말은 없지만... 글을 못쓰게 막는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이럴 시간에 못쓰던 글이나 붙잡고 있는게 더 생산적이라구요?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orz
암튼, 그래서, 시나리오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욕심을 부려서 이것저것 세워, 이젠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그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다 집어치우고, 가볍게 가볍게, 수다떨듯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쓰고 있는 워드파일은 귀신이라도 씌운것 같아요. 그것만 열면 심장이 벌렁벌렁....(설마)
이제부터 점저(?)를 먹고서, 저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까페 도토루로 갈겁니다. 오늘은 드립 커피를 마시지 말고 샌드위치를 먹을까나. 조금 더 좋은 기분으로 다시한번 힘내봐야겠어요. 어제처럼 어렵게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제갈량민 2009/03/21 20:10 # 답글
앗, 커피를 많이 드시면 저랑 비슷한 증상을 보이시는 군요! 물론 저는 조금 먹어도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토익 보기 전에 편의점에서 파는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230ml 짜리 한 병 쭉 들이키고 들어가면 온 몸의 세포가 뛰어노는 듯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문제는 시험이 끝나고 나올 때 즈음에 헛구역질을 한다는 부작용이...OTL어쨌거나 뢈님 글 읽으면서 너무 많이 공감했고, (XX의 소설은 사실 읽지도 않았어! YY의 노래는 제목만 안다! ZZ의 안무 같은 건 제대로 본 적 없어! 라고) 그 외치시는 모습이 너무 귀여우셔서 마구 토닥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뭐가 나쁜가요 :D 물론 전공자에게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이 될만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정석이지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취향이니까요.
글을 쓰든, 기획안을 작성하든, 의외로 딴 짓을 하고 있을 때에 좋은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뢈님의 이런 노력은 분명 긍정적 결과를 불러올 거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습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그 장면 기억 나세요? 득점이든 뭐든 루카와보다 훨씬 잘해야 해! 라고 생각하던 사쿠라기가 안 선생님의 리바운드 지시를 받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라고 했던 그 장면. 그리고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우리의 천재가^^
똑같다고 생각해요. 뢈님이 하시는 것에서 분명 생각지도 못했던 서프라이즈한 완성물이 태어날 거라고 상상해 보세요. 최근 함께 스터디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미지 트레이닝 해주는 거랍니다. 생각하는 만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이 든든해지더라고요.
후후. 그러고보니 저는 슬램덩크를 왜 좋아하고 있을까요? 미쯔이라는 캐릭터 하나에 관해서라면 10개 정도로 나누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데 슬램덩크라고 하니 저도 좀 "음..." 하고 생각해보게 되네요. 나는 왜 슬램덩크를 좋아하는 걸까? :)
뢈 2009/03/27 23:21 #
으하항, 늦은 덧글이라 쑥쓰럽습니다. 량민님의 이 덧글은, 정말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가 놀러오는 바람에 3일간 흐름이 끊겼습니다만, 다시 되돌려봐야겠어요. 아직도 조금 무섭(?)지만, 차근차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ㅇ^ 고맙습니다!!
imc84 2009/03/22 04:16 # 답글
에이 뭐 지적 허영이랄 것 까지 있나요. 모나지 않게 어울리도록 애쓰다 보니 공갈취향이 좀 불거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공갈취향같은 거 안 키우면 저처럼 인간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
슬램덩크 보다 말았고 토토로 보다 말았고 복수는 나의 것은 아예 안 봤고 찰리 채플린 영화가 찰리 채플린 영화인 이유가 찰리 채플린이 나와선지 찰리 채플린이 제작 또는 감독해선지도 모르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하나도 안 봤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누군지 가물가물하긴 한데 강도영의 큐브릭이라는 웹툰이 생각날 뿐이고 위대한 개츠비는 전혀 모르지만 그냥 개츠비라는 소설은 알파벳 e를 한 자도 넣지 않았다고 해서 알고있지만 역시 읽은 건 아니고 네 멋대로 해라는 안 봤는데 아일랜드를 봤고 그나마도 저는 케이블TV를 안 봐서 불법다운로드로(...)
다행히 저보다는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ㅇ<-ㄷ
뢈 2009/03/28 00:40 #
으하하, 그러게요 '공갈취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울림'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자기방어?!랄까 최면..() 같은 이유였던것 같기도 하고...(;;;으앙) 아무튼 용기를 주시는(?) 덧글 감사히 받겠습니다. 꾸벅꾸벅.. 주제넘게도 슬램덩크는 꼭 한번 완독을 권해봅니다..ㅠㅅㅠ 제 인생을 (좋은의미인지 나쁜의미인지 -_-;;;) 바꿔버린 만화라서(..) 이히히. 아니, 그나저나 개츠비라는 소설이 e를 한자도 넣지 않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것 같아요. 대단하군요! e를 안쓸 수가 있나 e를...(..) 저는 아일랜드도 끝까지 못봤다능. 엉엉. ㅠㅠ 중요한건 누가 뭘 더 많이 봤냐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어떻게 소화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이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으려나..) 아무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ㅅㅠ 정진하겠나이다. (으음?)
Mrchildren 2009/03/23 14:00 # 답글
ㅋㅋ 정말 귀엽구랴. 뭐 위로가 안먹힌다니 위로는 잠시 옆에 고이접어 포개어놓고 그냥 응원하리오!! 나는 그런 뻥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역시 범인을 넘어선 수준의 고민인듯하오.!! 잘하리라 믿소 근데 아무리 바빠도 내일 한일전 이기면 센다이 중심가를 태극기 목에 걸고 한바퀴 돌기..아 참고로 2채널에서 번역된 덧글중에..
'2채널러들은 썩어빠진 자존심에 지배되는 놈들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리가 없어. 일한이 원투 피니쉬를 끊는다는 건 명예로운 일인데도 말야.' 란 덧글이 있었는데. 이런 개념글을 보니 좀 반성하게 되는구랴.
이번에는 이기든 지든 멋진 게임하길. 어찌해봐야 난 영원한 코리아응원단!! 낼 꼭 보라굿
뢈 2009/03/27 23:25 #
으하하하하 에휴 이미 며칠전의 이야기군요 ㅠㅠㅠ WBC는 ㅈㅎ양의 문자로 중계를 받았는데, 정말 연장갈때만 해도 이길줄알았....에휴 이런 얘긴 해서 뭐하리 ㅠㅠㅠㅠ 암튼! 언제나 응원 감사합니다 오라바닝. 힘내볼게요 ^///^
타인 2009/03/28 01:04 # 답글
스타벅스의 드립은 탄맛이 너무 강합니다. 아메리카노는 좀 낫지만요.힘을 받을 때에 밀어줘야 하는 것이 있어요.
공부할 떄가 따로 있다라는 말등이 너무 종속적으로 들려서 부정하려했지만
요즘은 그리 쉽게 할 수 있지도 않읍니다.
뢈 2009/03/30 23:46 #
안녕하세요.. 아아, 역시 그런가요. 독한 커피를 마시고 독하게 쓰려고 했건만 심장만 벌렁거려 좌절했더랍니다. 타인님의 말씀도 백번 옳으시네요. 하아.. 역시 '밸런스'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마냥 부담만 가지고 아둥바둥해도 오히려 답이 없고... 그래도 이 때를 놓치지는 말아야겠지요! 아잣. 감사합니다.
cain 2009/03/28 02:39 # 답글
명동성당아래 도토루가 있었는데... 그게 없어진 것이 벌써 몇년 전 일인지 모르겠네요. 그런 까페에 처음 가봤던 저는, 익숙하게 핫도그와 커피를 사서 먹는 맞은 편 남자애를 난처하게 바라보았지요. =ㅂ=전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지브리 에니메이션 중에서 본 것은 게드전기뿐; 토토로도 안 봤어요() 복수 3부작도 하나도 안 봤고;; 찰리 채플린은 엄마 취향이라 좀 낑겨서 봤고; 라디오 헤드는 몇 곡 모르고, 그나마 제목 잊어버렸고;; 스타워즈 시리즈를 제대로 본 것은 프리퀼들 개봉할 때 스타워즈 좋아하는 친구가 볼 사람 없다고 징징거려서()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세 번 보고 세 번 다 졸았던가; '위대한 개츠비'는 저도 아직 안 읽었어요. 그거 무슨 비슷한 이름의 만화도 있던데; 그것도 역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한편도 못 봤고; 영화 역시 마찬가지고;;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혹은 형편없다고 말하는 몇 가지 들에 대해 몰라서 입다물고 있었다는()
뢈님 주변 사람들 취향이 제 주변 사람들 취향이랑 비슷한가봐요... ㅇ<-<
뢈 2009/03/30 23:52 #
으헤헤 그러게요 여기 도토루에서 일하는 제 친구는(한국인친구) 한국에 도토루를 열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었으나 한국에서 이미 예전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쿵; 후훗. 아니, 삼라만상을 알고 계실것만 같던 C님이 공감해주시니 저는 감개무량..ㅠㅠ 그러게요 그런가보아요오오.. 사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보고 그것만 아는것도 훌륭한건데() 웅얼웅얼. 감사드려요. (손꼬옥;;)
타인 2009/03/31 11:14 # 답글
광화문쪽에 아직 도토루 살아(?)있읍니다.커피가 3천원인가 했던 기억이 있네요.
주로 어르신들 마실 혹은 담소 장소 였읍니다.
뢈 2009/04/01 16:46 #
앗,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명동 어디선가 본적은 있는것 같은데.. 뭔가 일본에서는 꽤 성공한 커피+샌드위치(or핫도그) 체인점으로 번성하고 있는터라 한국에선 그 이미지가 전혀 ;; 살지 못하고 전락해버린것이 좀 아쉽더라구요. 다시 이미지 체인지를 할 기회는 없는가!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여기서는 가격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 친구가 있어서 할인을 받을수 있기에 ^^;; 자주 애용하고 있습니다. 헤헷. 덧글 감사드려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