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야스쿠니', 그 사이의 '안녕 사요나라' 봤다영화

지난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면서 영화 세 편을 보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리잉 감독의 '야스쿠니', 김태일, 가토 쿠미코 감독의 '안녕, 사요나라'. 각자 다른 과제와 레포트를 목적으로 고르게 된 영화였지만, 신기하게도 이 영화들을 보는 내 안의 감정작용은 한 줄로 이어져있었다.

셋 다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었던 만큼,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그래서 차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레포트 사전 작업 겸, 뒤죽박죽 적어보는 몇 가지의 감상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래봤자 한 편은 역사물이고 두 편은 다큐멘터리라 별거는 없지 말입니다;;)


S#1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지지하면서도 이 영화가 국내 공개 되지 못한 것에 내심 안도하는 이유

이 영화와 이른바 '이오지마' 셋트인 '아버지의 깃발'을 본건 그 영화가 개봉했을 때였으니 아마 2007년 정도의 일이었을 거다. 이오지마에 깃발을 꽂는 사진으로 전쟁 영웅이 된 세사람의 삶을 통해 전쟁에 영웅따윈 없다, 모두에게 비극일 뿐. 이라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했던 '아버지의 깃발. 개인적인 취향에 비추면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의미있는 영화', '좋은 영화'였기에 꽤 감명깊게 보았다.

셋트였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화제였기에 개봉을 기다렸는데 당시 여러가지의 이유로..(딱히 이 영화 자체가 위험해서..라기보다 '청연'도 친일파라는 얘기에 완전 쪽박 찼듯, 무엇보다 이 영화가 한국에 잘될리가 없다는 경제적 판단에 의해서 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깃발에 딸린 DVD출시 정도로 정식 개봉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늘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 영화를 2년이나 지나서 드디어 보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 역사적 이슈를 다루는 수업에서 이 영화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일본 T대학입니다) 살짝 옆길로 새자면, 이 수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수업이면서도 싫어하는 수업인데,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영화를 보기 때문이고 싫어하는 이유는 교양수업이라 1, 2학년이 200명 정도 가득한데 대다수의 애들이 정말정말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워낙 나긋하신 분이라 아무리 떠들고 들락날락거리고 딴짓을 해도 전-혀 아무런 터치도 없다. 그러니 수업 분위기는 정말 시장통. 맨 앞 자리를 놓치면 영화는 다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도 떠들어서 들을 수가 없음) 특히 좀 뒤에 앉으면, 불을 끄고 영화를 보는데도 당당히 책상 위에서 발광하는 핸드폰 불빛들, 1분에 두명은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통해 교실 밖의 빛이 아주 아름답게 비추곤 하신다. 한 마디 하고 싶어도 선생님도 가만히 계시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정말 참을 인자 세개를 그리며 겨우 참는다.

어쨌든, 이렇게 예의없는 것들이 가득한 수업이다보니 문득 얘네들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고 이해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뭐 차라리 엎어져자느라 영화를 안본다면 그만이겠지만, 이 영화는 솔직히 말해서 보는 입장에 따라 잘못 이해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를 본 후 '야스쿠니'를 보고 나자 더욱 그것이 명료해졌다.

아직까지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전쟁, 아시아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했던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사람들이 있는 한, 태평양전쟁은 '전쟁은 누구에게나 비극,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는 '모든 전쟁에 대한 일반론'의 단계까지 오를 자격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쟁이 신성했다는데, 희생된 군인들이 불쌍한게 아니라 위대하다는데, 어쩌라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공감한다. '아버지들의 깃발'에서 미군 입장의 이오지마를 그렸으니 일본군 입장의 이오지마도 그리며, 이긴 쪽도 진 쪽도 전부 불행한 전쟁 이야기를 하자. 영웅이 없는 전쟁이야기를 하자. 무척 훌륭한 의도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미국인이며,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어찌됐든 원폭이라는 비인도적인 방법까지 써가며 일본을 패전시키기도 했다는 과거가 있다. 그리고 지금,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그들이 전쟁을 반성할 때, 전형적 전쟁 영웅 영화 '진주만'의 불공정한 일본인 묘사를 버리고 정치적 올바름, '공평'함을 목표로 했을 때, 이 영화가 나왔다. 

미국이 그들의 전쟁을 반성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것일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는 그것이 유효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은 화해를 이루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아, 우리들의 양심선언이자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메시지!'이라고 끼리끼리 감탄했을지도 모르는 이 영화는, 사실 '그때 그 싸움'에 당사자들 만큼이나 깊이 관여하고 있던 아시아인들을 쏙 빼놓고 있으며 그것이 일부 일본인들에게는 태평양 전쟁을 변명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될 수있다는거다. 이게 지나친 생각일까? 글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그건 이 영화가 나쁜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쁜거다. 이 점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게 고통을 받았던 역사를 가진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보며, 확실히 말해 이 영화의 '균형'은 '강자의 여유'일 뿐이다. 아직 상흔이 가시지 않은 동아시아와 끊임없는 망언을 쏟아내며 '대동아전쟁'운운하는 일본의 사이에서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닌.

요컨데 이 영화에서 말하는것이 '일본군 개개인이 나쁜 것이 아니다(물론 미군 개개인도 나쁘지 않다), 그들 또한 희생자이다. 전쟁이 전부 나쁘다'라면, 뒤는 다 자르고 "거봐라, 상도 많이 받은 영화가 '일본군 개인개인이 나쁜것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느냐! (그니까 더 이상 사과하라고 하지마!)" 라고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빼내어 취하고도 남을지도 모르는 것이 일부 일본인들의 전쟁 의식이라는 거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전쟁엔 영웅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다는 이 시리즈 치고는, 쿠리바야시 장군은 솔직히 너무 영웅틱하게 그려진다. 뭐 하나 빠지는데가 없지 않은가. 인간적이지 현명하지 충성심 높지.. (..단지 와타나베 켄이 너무 멋있어서 일까?;;) 

게다가 그는 '일본식' 전쟁 영웅의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대본영(당시 본부)이 이오지마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도, 아무런 승산이 없다는걸 알면서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 아무리 그가 미국을 경험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해도 천황에 대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하는 커다란 요소이다. 물론 다른 일본 장군들에 비해 합리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묘사는 어쨌든 플러스 요인일 뿐이다. (그 합리성은 또 그의 친미적인 배경으로 설명 되기도 하지만. ;;)  

오히려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연기한 까칠한 병사 사에고, 카세 료가 연기한 헌명대 출신 시미즈가 이 영화의 본분에 충실한 언행을 보인다. (물론 실존 인물이자 비교적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쿠리바야시 장군을 재구성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상상의 폭이 넓은 일반 군인 신분 역할의 인물이 감독의 의도를 반영했을 것이라는건 자명한 일이다.)

이 영화의 시작이 "우리는 작은 섬에 갖혀있어 ... 아마 다 죽게되겠지"라는 자조적인 편지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무척 인상깊고, 의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전쟁에 삶이 파괴되는 개인을 보여주는 셈이다. 전쟁의 대의를 의심하고, 적국의 어머니도 우리의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깨닫고. 국가가 억지로 심어준 증오의 정체와 허상뿐인 약속을 깨닫고, '살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망을 발견해가는 개인.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살하는 광기어린 카미카제특공대 와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군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다.

이런 장면들 외에도, 말그대로 '개죽음'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집단 자살 장면 묘사를 통해서 '천황폐하'와 '야스쿠니'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또 공포스러운 것인가를 은연중에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에고와 시미즈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사실 미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강요하는, 같은 일본군의 광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렇다고 일본군의 비상식성을 강조함이 아님을, 그에 비해 미군이 훌륭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마저, 미군에 스스로 포로가 된 시미즈를 통해 보여주는 치밀함을 보인다.;; 균형을 잡기 위해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진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쿠리바야시 장군의 영웅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엔 참 여러가지 섬뜩했던 장면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섬뜩했던 것은 영화의 말미쯤 대본영에서 보내주는, 쿠리바야시 장군의 고향인 나가노켄 어린이들이 장군을 위해 부른다며 라디오를 통해 들리는 노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라는 국가의 냉혹하고도 차가운 명령이, 어린이들의 순수한 음성의 탈을 쓰고 먼 이오지마까지 울려퍼진다. 차라리 끝까지 싸우라고 협박을 할 것이지, 정말이지 잔인하고 비겁한 짓이다. 그리고 그 라디오를 들으며 장군은, 어린이들의 노래속에 숨겨진 나라의 잔인한 명령을 읽는다. 이미 벼랑끝에 내몰려 돌아갈수도,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그 노래가 밖에서 날아오는 총탄보다도 더 절절히 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조금 깊은 곳을 읽는다면, 쿠리바야시 장군 또한 피해자라는 해석에 쉽게 닿을 수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한 듯이 천황신앙과 대동아전쟁 사상을 강요받아 여기까지 왔으나, 자신의 미국 친구들을 마음 한구석에 늘 그리고 있는 장군은 사실 미국과의 이 전쟁이 싫었을 것이다. (뭐 물론 자신의 의지는 국가의 의지;; 이런 말을 하긴 하지만 =,.= 솔직히 이런 묘사가 마음에 안든다는 거다. 왜냐면 우익들이 좋아할거 같아서.;)

그가 그토록 사랑한 조국은 결국 장군을 구원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조차 잔인하게 등을 떠밀뿐, 죽을 걸 알면서도 나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지워줄 뿐. 장군이 죽기전에 '야스쿠니에서 만나자' 따위의 말을 하기 보다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묻어달라고 한건 아마 '천황을 위한 대동아 전쟁 영웅' 아닌,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전쟁의 희생자'로서 자신을 인식했다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깊은 곳을 읽어낼 만큼 일본 사회의 의식은 성숙해있는가? 나는 끊임없이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장면을 단순하게 읽으면, 나라를 위해 싸우라는 어린이들의 노래에 감명받아 이 한몸 나라와 천황폐하에 바치러 나간게 아니냐! 라고도 충분히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글쎄, '색, 계'를 혁명 중에 물질의 노예가 되면 죽음 뿐이다 라고 해석한 중국 정부도 있지 않냔 말이다;; =_=)

나 또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자살하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는 일본인 병사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엾게 생각한다. 사악한건 그런 신앙심을 심어주고 그걸 이용해먹는 나라다. 그걸 아는 사람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하고 자살하는 병사를 보며, 당시 전쟁의 광기를 회상하고, 그런 전쟁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야스쿠니는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살아있는 신화이다. '천황폐하만세'는 '하일 히틀러'처럼 이미 죽은 전 시대의 유물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도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이 열도에서 최소한 '우익'들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진정한 의미를 절대로 '오독' 할거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물론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위험성이 있는 영화인 만큼, 이 영화가 아직 우리에게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올바름을 자찬했을 서양사회의 동아시아에 대한 무배려가 아쉽기도 하다. 미국 아동문학가들 중에 일본계가 많다는건 이미 알려진 얘기다. 물론 모두가 일본에 유리한 식으로 이야기를 쓸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또 일본도 미국에 의해 피해를 입은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의 피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입힌 피해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라는 지극히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공평'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일본이 서구사회에서 '피해자의 억울한 입장'이 되어있는 것을 가끔 볼때마다 무지하게 열받고 화가난다. (실제로, 여기서 미국인 유학생이 일본의 태평양전쟁 피해내용만 무지하게 강조해서 담은 팜플렛을 감명깊게 읽었다며 미국에 있는 부모님에게도 보내는 걸 봤다. 오 마이갓.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일본 대중문화의 인기로 무턱대고 일본에 우호적인 서양 친구들중에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물량공세로 밀어부친 미국에게 무사도로 대응해서 싸웠으나 결국 패배한 가슴아픈 일본의 역사를 담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정말 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일본이 자신들과 같은 역사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영화를 만들었겠지만, (물론 의식적인 일본인들도 있다는 것을 절대 부정하고 싶지 않으며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전 '수상'들을 비롯한 '정부의 입장'을 보면 아직 멀었소이다, 하는 걸 좀 알아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이건 기우이길 바라지만, 와타나베 켄, 니노미야 카즈나리, 카세 료 등 국내에도 인기가 많은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특히 아무리 까칠하게 나왔다고 해도 일본군으로 나온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무려 아이돌! 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밑도 끝도 없이 니노미야가 분한 일본군에 로망을 가질 뭇 소녀팬들이 걱정되기도 하므로;; (아니 노대통령 서거에 무한도전 안한다고 욕을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니 정말 좀 걱정;;)

그 의도는 좋은 영화임은 틀림없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이 영화를 혹시나 악용할, 오독할 누군가들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아직은 조금 일렀던 영화.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고 훌륭한 이 영화의 의도를 동아시아 모두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에, 영화에 그려진 역사보다 오히려 더 슬픈 지금 우리의 현실에 먹먹함을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S#2 야스쿠니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결코 평화의 땅이 될 수 없을 야스쿠니의 모습들

중국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가 우익단체에 의해 일본에서 상영을 방해받고 결국 취소 되는 해프닝을 겪었다는 것은 나름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어떤 자극적인 내용이 담겨 있나 궁금했는데,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상영을 방해했다는건 스스로 창피한 것을 자백하는 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이 영화에는 나레이션이 없다. 2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동안, 감독은 그다지 화면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야스쿠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줌과 동시에, 야스쿠니 신사에서 신을 담고 있다 여겨지는 물건인 칼을 만드는 한 장인이 칼을 만드는 과정과 그와의 인터뷰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을 뿐이다.

야스쿠니 신사 안은 지금도 전쟁 전과 같은 분위기다. 노인들이 군복을 입고 행진하며 칼을 휘두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수상이 전사자 참배 하는데 남의 나라 눈치를 보는 멍청한 나라는 일본뿐이라 소리 지르며 박수를 받는다. 지금도 야스쿠니 신사 안에 있는 박물관은 '대동아전쟁'을 신성시 하는 자료들로 가득하며,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침략전쟁이라 하는 것은 전사자들과 일본에 대한 모욕이라 말한다. 새삼스럽지만, 여전히 놀랍지 않은가?

남경 대학살을 부정하는 서명운동을 비롯한 온갖 우익 관련 이벤트는 모두 야스쿠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일본 신문에서 '남경에서 100명 빨리 죽이기 시합을 하는 병사들'등의 기사를 비롯, 자국에서 만들어진 숱한 자료들이 뻔히 있으면서도 서명운동으로 역사를 부정하려 하는 야스쿠니 맹신자들. 다들 아시겠지만 남경 대학살 혐의로 중국에서 전범 판결을 받고 사형당한 인물들을 비롯 동경재판의 A급 전범까지 전원이 야스쿠니에서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이처럼 야스쿠니 신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퍼즐처럼 나열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건 한 미국인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한다는 플랜카드를 들었던 사건을 담은 내용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처음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슨 우익단체한테 돈이라도 받나 싶었지만, 그 보다 더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으니..(두둥)

처음에는 미국인 주변의 노인들이 다 그를 칭찬하며 부시에게도 고이즈미를 지지하라고 전해주라고 그를 응원(?)한다. 그러다 한 사람이 미국인 따위가 야스쿠니에 들어오는게 아니라며 꺼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 나자 갑자기 주변 사람들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그 미국인은 성조기도 들고 있다. '세계 2차대전때 한 짓을 잊을 줄 알아! 니들한테 속을 줄 알아!' 라고 고함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소동이 커지다보니 경찰이 나타나 허가를 받았냐는둥 점점 비우호적으로 변하게 되고, 성조기를 빼앗으려, 주먹질을 하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든다. 그리고 미국인은 쫓기듯 그 자리를 떠난다. ;; 오잉? 같은 편 아니었어 니들?

한 마디로 '정상이 아닌' 그들의 이 사이비 종교같은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치 누구의 신앙이 더 깊은지를 시합하는 꼴이다. 그들의 언행에는 논리가 결여되어 있다. 군중심리와 폭력과 고함이 있을 뿐이다. 야스쿠니 신앙은 외부자를 철저히 배격한다. 어쩌면 천황을 위해 죽은 자만이 신으로 모셔진다는 그 태생자체가 타자의 목소리가 개입할 수 없는 공간 일지도 모른다. 같은 편으로 보여도 최대한 다른 점을 찾아내고 '우리'끼리의 신성함을 끝없이 추구하는 곳. 맹목, 아집과 배타로 꽁꽁 뭉친 곳.

고이즈미 당시 수상이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일개 정치인의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동안 야스쿠니 신사의 한 행사장에서는 '야스쿠니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도구'라고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일본 젊은이는 경찰들이 보는 와중에도 우익들에게 피터지게 맞고, 상처 치료를 핑계로 강제로 구급차에 실어가려 하는 것을 거부하자 결국 경찰차에 실려간다. 이 정도 맞은 것은 아픈것도 아니라고, 우리가 동아시아에 휘두른 폭력을 생각하면 이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절규하던 청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었지만, 한국, 타이완을 비롯해 오키나와, 일본인 중에서도 야스쿠니에 합사 된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합사 취하 소송을 벌이고 있는 내용도 다뤄진다. (우리나라의 이희자씨도 화면 구석에 조금 보인다. 사실 '안녕 사요나라'에도 완전히 같은 장면을 다른 카메라로 찍은 것이 나온다.)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이 영화는 사실 전혀 친절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더더욱 야스쿠니의 광기, 비정상성, 폭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렇게 중간중간 맥을 끊어가며 지루하게 칼을 만드는 장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건지 쭉 궁금했었는데, 야스쿠니 정신=칼 이라는 도식을 영화 전체를 통해 천천히 쌓아간 후, 감독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영화 말미에 그 칼이 동아시아를 어떻게 살육했는가 시각적인 자료를 통해 무척 강렬한 느낌으로 전달한다.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야스쿠니를 둘러싼 우스꽝스럽고 광기어린 '쇼'들을 찬찬히 담았던 영화가 드디어 그 모든 것에 대한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대목이다.  

지금의 야스쿠니 신사가 그렇듯 이 영화 또한 그곳을 향해 어느새 차근차근 준비해둔 칼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 같았던 느낌이랄까.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광기와 뻔뻔함과 폭력으로 만들어진 땅 야스쿠니와 그를 둘러싼 도쿄의 야경의 라스트 씬. 어쩐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그들을 향해 굳게 문을 닫은 야스쿠니의 폐쇄성이 함축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흐름 상, 개인적으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본 직후 '야스쿠니'를 보았으니 거기서 죽은 일본군들이 야스쿠니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조금 재미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죽은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모욕하며 아직도 군국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우익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물론 주입식 교육의 탓도 있겠지만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죽은 자들의 마지막 말은 스스로의 죽음을 헛된것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인간적인 열망이 가장 컸을 것이다. 더욱이 그 긴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숱한 국민들을 병사로 이용해야 했을 터이니, 명목도 만들고 충성도도 높이기 위해 '잘' 만든 허울로 불쌍한 사람들을 동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우리는 안다. ('야스쿠니 문제(한국에도 번역됨)'라는 책을 보면 당시 아들이 전사하고 야스쿠니에 모셔졌다 믿는 노파들의 좌담이 실려있는데, 정말 가관이다.; 천황폐하를 위해 우리 아들이 쓰였다고 생각하면 기뻐서 이제 당장 죽어도 좋다질 않나...orz 멀쩡한 목숨 빼앗아가고 이런 칭송까지 받으니 이보다 편리한 시스템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그러나 왜 전쟁이 끝나고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우익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야스쿠니는 실제로 역사가 깊은 신사도 아니다. 메이지 시대에 유신과 함께 천황을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체제를 만들면서 '군사기관'의 '정신교육담당'정도로 만들어진 기관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해서 뭐하겠냐만 차라리 야스쿠니의 정점이 되는 텐노가 히틀러처럼 일회성 지도자였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참 기똥차게도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국가의 강요에 의해 군인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던 사람들, 그리고 최소한의 심리적 보상을 주기 위해 '텐노를 위해 싸우다 죽으면 신이 되니 영광으로 알아라'라는 말도 안되는 교육을 주입한 나라, 자신의 삶이 전쟁으로 파탄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죽음이 두려워 견딜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어쩔 수 없이 믿던 마지막 희망, 그리고 자신의 자식, 형제, 남편의 죽음을 헛된 죽음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겨진 사람들의 피난처.

야스쿠니 신앙은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가 없다. 전쟁을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역사는 부끄러운것이 되고 전사는 개죽음이 되니까. '이오지마'를 보고 느꼈던 불안함이 완전히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지지자들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뜨면, 자신들의 역사가 해온 전쟁의 무의미성과 잔혹함이 드러나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국가에 의해 희생되었을 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부터의 보상요구에도 눈을 돌리고 있는 형편인 일본정부는, 국내의 유족들의 비판 까지 들을 자신이 없는건지 야스쿠니를 암암리에 지속하려, 세력을 키우려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전쟁 유족들이 현실을 직시 하게 하는 대신, 그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다같이 군국주의, 야스쿠니라는 마약을 맞고 있고 있는 셈이다. 병들고 썩어가는 것을 외면하며.

영화 '야스쿠니'는 그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제시할 생각도 없다. 중국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야스쿠니 믿음의 광기를 처연히 그렸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의, 우익의 대답은, 상영 중지.

무척 절망을, 회의를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여담이지만 우익의 망언 업데이트는 일본에 있을 때 들으면 그 분노가 이상하게 두 배로 세 배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는 뭐가 좋다고 여기 와있는거지?! 라는 생각에 자기 혐오에 빠지는게 가장 큰 원인인것 같지만;) 전에 포스팅했던 우익소년;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여기 와서 만든 개인적인 관계들에서 이렇게 역사를 싹 제거한 채 히히호호 지내도 되는건가 하는 그 해묵은 고민이 또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 때 나를 구원한 영화가 바로, '안녕, 사요나라' 였다.




S#3 안녕, 사요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모두가 꼭 한번쯤은 봐야할 다큐멘터리

눈물도 참 많이 흘리면서 봤다. '안녕, 사요나라'는 야스쿠니 합사 취하 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희자씨와 평범한 일본인이자, 사회 운동가이기도 한 후루카와씨가 중심이 되어, 답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함께 손잡고 풀어가자며 서로를 다독이는 영화다.

묵직하게 야스쿠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게된 '야스쿠니'와는 조금 달리,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조금 여성적이다. 각 주인공이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점도 그렇고,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물론 태평양 전쟁과 얽힌 참 다양한 곳-오키나와, 남경,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던 위안부 수요집회, 소록도 등-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 자신이 모시고 싶은 곳에 모시고 싶다는 생각은 생각해보면 정말 참 당연한거다. 그 하나만을 위해 이렇게 외고집으로 힘든 싸움을 계속 하는 이희자 씨가 참 대단해보였다. 우리 사회 또한 일본과의 역사 감정에 대해, 당연히 사과받아야 하고 배상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잊고 관심갖지 않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힘. 몇 번이고 거절당한다면 될 때까지 귀찮게 구는 노력이 없으면, 슬프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이 싫다고, 무슨 말을 해도 다 거짓말로 들린다는 어르신들을 보며 어쩐지 반성도 되었다. 내가 10개월 가까이 여기서 생활하면서 혹시 생각없이 언동한것이 없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고.

하지만 이희자씨 만큼이나 나에게 감동을 준것은 후루카와 씨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새삼 일본을 향한 증오를 키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인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그 고통을 최대한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본인들, 그리고 역시 그 전쟁으로 고통 받은 일본인 개인들- 집에서는 그저 착한 아들이었고 남편이었던 사람들과 그 아들을 잃고 눈물속에서 살아가야했던 일본인 어머니의 고통 또한 담고 있는 것이다. 미군 어머니의 마음도, 일본군 어머니의 마음도 같다던 '이오지마'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라고나 할까.

동아시아인들이 보면 기함할 정도의;; 논리를 펴는 야스쿠니 옹호자들의 논리도 담음으로서 그들이 어떤 논리로 이 광기에 빠져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편, 그리고 '야스쿠니 문제'를 집필한 다카하시 테츠야 교수를 비롯, 양심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이 적절한 해설을 해줌으로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맥을 짚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를 통해 대동아성전대비라는 혐오스러운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알았지만 (오오, 대동아전쟁은 아시아를 비추는 거울!이란다. 아. 돌아가기 전에 부수고 갈까. =,.=) 한편으론, 이 물건에 대해 전혀 보도되지도 않을 뿐이라 관심도 없는 우리나라에 비해 몸소 그 혐오스런 물건의 철거운동을 하고 있는 양심적인 일본인 분들이 있다는 것 또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곧잘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하고 잊고 분노하고 잊고를 반복하곤 하지만 '진짜로 일본 사회에는 어떤 목소리 들이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참 무관심했지 않나 싶다. 망언이 나올 때 마다 '역시 쪽바리'라고 일반화 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는게 사실이니까.

후루카와씨에 따르면, 보통 일본사람들은 야스쿠니가 전쟁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것도, 바다건너 아직도 그 전쟁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고 한다. 모르는 것은 물론 때론 죄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싸잡아 비판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교육을 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책임 회피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 전쟁의 피해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양심적 일본사람들처럼 그들도 변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다는, 함께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따뜻한 시선이다.

우리와 무척 복잡한 역사, 관계를 가진 나라이건만 지금은 너무나 친숙해져버리기도 한 일본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고 싶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이나마 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그-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의 일본인 친구를 떠올린다. 만화가 좋아서, 일본 문화가 재미있어서, 라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찌어찌 일본어도 배우고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한국인이라는걸 잊지 않는 한, 아직 전쟁 역사가 끝나지 않은 지금, 그 모든 배경을 지우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실제로 나는 그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기를 거부하겠다. 이희자씨의, 후루카와씨의, 그 외의 수 많은 싸움을 계속하시는 분들의, 길고 힘든 싸움을 보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꿋꿋이 가시는 그분들을 위해 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공부하고 행동해야 하곘지만, 지금 당장 우리 모두가 희생되고 짓밟힌 수 많은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도 언제까지나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행위가 당연하듯, 독도를 둘러싼 싸움만큼이나 경제적인 이유 등등을 핑계로 차순위로 계속 밀려나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태평양 전쟁의 상흔도 중요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주었으면.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포기하지 말았으면. 끝나지 않은 태평양 전쟁을 힘겹게 치루고 있는 한국인 유족들 만큼이나, 전쟁을 반성하고 진정으로 동아시아와 손잡고 평화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그러므로, 지금 이토록 절망적인 공간인 야스쿠니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는 것을 결과로서 보여줄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었으면 좋겠다.



(+) 요즘 관리가 뜸한 것 같지만(..아,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한국 홈페이지 http://www.anti-yasukuni.org/index.php

(+2) 그러고보니 왜 야스쿠니 측에서 합사 취하를 거부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야스쿠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안녕 사요나라'에서는 등장한다. 그들이 논리는 '신도'의 종교적 규칙(이라는게 있긴 한가보다)상 한번 올린 신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거다. 하지만 물론 이건 핑계일 뿐이고 합사가 취하되는 순간, 그들이 위대한 전쟁영웅이 아닌 희생자이자 가해자임을, 대동아성전이 아니라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3) 영화감상문인데 다 쓰고보니 딴 얘기가 더 많은것 같아서;; 영화밸리냐 역사밸리냐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역사밸리에 글을 다 보내봅니다. 훗;;;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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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rchildren 2009/07/09 12:07 # 답글

    복잡한 듯 하지만 결국 극우의 '우기기' 라는게 우리네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구나. 끌끌. 간만에 컴백!!
  • 2009/07/10 20:58 #

    후후 간만의 컴백이었지만 또 기나긴 공백이 예상되는.. 아 포스팅거리 진짜 많은데....일용할 포스팅거리들이 썩어 없어지고 있슴 ㅠㅠㅠ 포스팅은 타이밍인데 말이죠 끌끌 ㅋㅋ 그나저나 최소한 일본 극우는 자기나라에 유리하게 하려고 저런다쳐도 우리나라 극우는 왜 일본에 유리한 짓을 하는걸까요? 하하하=,.= 아아~ 심오한 근현대사여.
  • 곰돌군 2009/07/09 12:20 # 답글

    잘 보고 갑니다.
  • 2009/07/10 20:58 #

    길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ㅇ^
  • imc84 2009/07/10 22:22 # 답글

    이 글을 보니 - 좀 다른 얘기지만 ... 저는 "우리 학교"라든지 "GO"- 아니면 식스티나인 - 이 쪽 주제가 생각나네요.
    최근에는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를 읽었는데 볼만 했습니다. 초반부 자이니치 형성을 둘러싼 역사적 인과하고 현대의 의미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고... 중후반부로 가면 초반에 심어 둔 국민, 국가, 민족 이 세 개념을 갖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현존하는 다른 분쟁 사례에 일반화시키는데 수긍할만한 점이 있었어요.

    영화는 저도 생각날 때 봐야겠군요. 일본 쪽은 상업주의 애니메이션 쪽에서 점점 전쟁 소재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럽습니다. 최근 스X라이크 위치스... 같은 게.
    그런 게 무서운 것 같아요. 딱히 전쟁을 미화하려고 의도해서 미화되는 게 아니지요. 전쟁이 기록으로, 소재로, 유희로, 상품으로, "중립적인 상업주의"에 의해서 쉽게 퍼뜨려지는 게 아주 결정적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문과주제에 역사에 약해서 저도 큰일입니다 ㄱ-;
  • 2009/07/11 11:17 #

    오오. 저도 재일에 관심은 많은데.. 아직 근본적인 부분까지는 닿지 못한것 같아 늘 좀 답답하고 아쉽더라구요. 실제로 재일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도 오히려 깊은 얘기까지 묻거나 하는것도 실례인거 같아 잘 안하게 되고.. 추천해주신 글 나중에 꼭 읽어볼게요. 제목도 아주 좋군뇨. (좀 다른얘기지만 식스티나인에도 재일 관련 네타가 있었던가요? ; 감독은 이상일씨이긴 하지만.. 전공투, 68혁명이 주된 테마이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오래되서 가물하네용)

    음, '안녕, 사요나라'는 꼭 보셨으면 좋겠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한번쯤 보시면 여러가지 고민이 생기실듯(..으음?!) 음, 지내다보니 느껴지는게 이 나라는 뭐든 가볍게 '이미지'만 포장해서 잘 다루는것 같아서 말이죠;; 게다가 게임, 아니메 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이다보니 소재로 가장 쓰기 쉬운게 전쟁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상업주의를 핑계로 나온 그것들이 정말 중립적이냐라는게 의심되는 예들도 아직 있다는게 문제인것 같기도 하구요. orz

    그나저나 imc84님은 혹시 역사에 약하다고 하시더라도 IT에 무척 강하시니 저는 그저 존경할 따름입니다... 오오오오오
  • imc84 2009/07/11 11:22 #

    아, 식스티나인은 '그 쪽 주제'라서 한 얘긴 아니고 단지 GO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언급한 건데 잘못 썼군요(...) 전 일본작가 좀 좋아한다는 인간들이 죄다 하루키만 알고 있을 때 류(쇼류켄...어?)를 얘기하던 캐 아싸. (문제는 식스티나인 말고 무라카미 류의 다른 책은 안 읽어서...)
  • 2009/07/13 14:31 #

    아 쇼류켄의 책을...어?!
    그렇군요. 식스티나인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영화보다 소설을 좋아합니다만 사토시와 안도 마사노부의 합동공격엔 당해낼 재간이..응?!

    무라카미 류 선생의 책은 워낙 빡센;;게 많아서 저도 처음엔 저항이 좀 있었습니다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같은 경우 첨엔 끝까지 읽지도 못했는데, 나이를 좀 먹고서 차분히 다시 읽어보니까 보면 볼 수록 뭔가 그 절실한;;게 전해져오더라구요. 읽은지도 오래되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으로 류선생의 소설들중 좀 소프트 한 것중에(SM도 마약도 안나오는 드문 책이지요 넵) 추천하고 싶은 책은 '쿄코'입니다. 기분이 팔랑팔랑해지는 좋은 소설이에요. 언제 여유가 되시면 한번..헤헤.
  • 2009/07/11 11:4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7/13 14:30 #

    응응 전에도 얘기해줬었지. 근데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건 개입이라기보다.. 음 아무래도 '비판'을 할거라 생각했던 다큐멘터리였으니까, 마이클 무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레이션이든 뭐든 이용해서 사건들에 대한 코멘트들을 할 줄알았는데 정말 전-혀 없다는게 좀 의외였거든. 근데 개입하는거나 이거나 그게 그건가.. 으허허허. 읽어볼 책이 많구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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