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자본의 뜻대로 -다 지난 꿀벅지 이야기 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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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벅지 얘기가 한창일 땐 머리가 아파서 그냥 패스했다가 얼마전 신방과 과제로 한 달간의 미디어 이슈에 관해 논평하는 글을 써내라고 해서 이걸 골라서 썼습니다. 남/녀 얘기라기 보다는 미디어의 언어사용(?)에 대해 평소에 느꼈던 이야기. 그래도 나름 시사적(?)인 이슈였던 만큼 열풍이 쓸고 지나간 후 좀 고쳐서 슬쩍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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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요계는 걸그룹의 전성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2NE1’, ‘카라’, ‘애프터스쿨’, ‘브라운아이드걸즈’ 등이 계속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선전하고 있는 남성 아이돌 그룹들도 있긴 하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의 숫자를 단순히 비교해도 그렇거니와 사회적 관심이나 중요한 이슈는 걸그룹에 많이 편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최근 내 관심을 끈 것은 ‘애프터스쿨’이라는 그룹의 유이라는 멤버를 인터넷 상에서 ‘꿀벅지’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급기야 신문 기사 등에 차용되면서 논란이 된 사건이었다. 이것이 ‘논란’으로 까지 번진 구체적인 발단은, 어떤 여고생이 ‘꿀벅지’라는 단어가 불쾌하니 언론에서의 사용을 제한해 달라고 여성부에 제안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시점에(이 두 가지 사실의 전후, 상관관계를 사실 명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심적으로 그 단어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던 여성들이 많았던 모양인 건지, ‘꿀벅지’라는 단어와 그 사용에 대해 개인들의 여러 가지 의견제시와 토론이 인터넷 토론공간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중 ‘그럼 초콜릿 복근이나 짐승아이돌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 아니냐’라는 반론이 제기 되기도 했으며, 결국 유이 본인이 ‘기분 나쁘지 않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에서 논란(?)은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터넷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연예인들에게 주류 미디어에서는 나오기 힘든, 재치 있거나 신선한 별명을 짓고, 그것이 나름대로 널리 사용되기도 하는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 중심에 DCinside라는 독특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었고, 요즘에는 그 인기가 많이 식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아직 유효한 듯 하다. 그 반증으로, 최근의 미디어, 특히 신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한 가벼운 신조어들을 소재로 쉽게 차용해오고 있다. (그래서 가끔 그런 기사들의 ‘베플’을 보면 ‘기자 또 DC하고 기사썼구나’등의 덧글 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다양한 별명을 소재로 삼거나 헤드라인 등에 사용했던 WBC 보도를 비롯한 스포츠 보도에서였다. 야구를 잘 모르는 나 이지만 ‘꽃범호’나 ‘김별명’ 등의 야구선수 별명은 미디어에서도 많이 쓰여 알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사실 ‘꿀벅지’를 문제 삼은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이건 어떠냐’며 반론으로 삼은 ‘짐승 아이돌’, ‘초콜릿 복근’이라는 표현 또한 사실 그 동안 포털 사이트 뉴스, 심지어 방송의 자막 등에서조차 공공연히 써왔던 단어였다. 그러나 그 동안 이렇게 커다란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인터넷발 신조어’가 ‘꿀벅지’에 와서 논란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이 논란은 무척 다양한 시점과 여러 가지 문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꿀벅지를 ‘성폭력적’, 혹은 ‘성적’ 함의를 가진 단어이므로 쓰면 안된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꿀’이라는 단어와 ‘허벅지’라는 특정 신체부위가 합쳐졌다는 점에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 즉 ‘핥아먹고 싶다’던가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성적인 의미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다.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하고 성을 상품화하였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이 갈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말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한다’고 문제 삼기 보다는 '공공의 영역인 언론'에서, 저속하거나 저속한 의미를 함의할 수 있는 이러한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또 다른 관점도 있다.

대충 이러한 갈래에서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심정적으로 공감되는 부분도 컸지만 성적 차원의 논의만으로 딱 잘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의견을 피력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 상품화나 신체의 파편화 현상은 이미 우리의 현실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아득할 정도이다. 물론 그것이 그래서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그 모든 것들의 상징이 되기에는 애매한 지점에 있다. 또 그 말의 ‘성폭력성’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이 본인이 ‘기분 나쁘지 않다’라고 밝힌 것이 이 부분에서 무척 유의미하면서도 무의미한데, 우선 ‘꿀벅지’라는 말로 형용되었던 대표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이 ‘기분나쁘지 않다’고 밝힘으로써 그 말에 성폭력성이 없다는 것을 반 정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유이 본인이 그것을 매력으로 내세운, 극단적인 말로, 기획된 이미지 상품일 경우, 한 여성 주체로서의 유이와 연예인 유이의 갭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그 말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것이 꼭 유이 본인만을 지칭하는 경우라고 한정할 수도 없으며, 이미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단어 사용에 의해 수치심을 느끼는 대상이 반드시 지칭된 당사자에 한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애매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 단어 사용에 수치심을 느끼는 개인이 있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무척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평소 미디어의 언어 사용에 대해서 여러가지 불만과 관심이 있던 편인데, ‘미디어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만 이 문제를 보자면, 이번 ‘꿀벅지’ 논란이 이렇게 정말 '논란'이 된 것은 그 의미를 모든 사람이 공유하기 이전의 과도기에 있거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단어가 무분별하게 쓰이는 현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요즘의 ‘섹시하다’라는 말은 어원인 sex에서 파생된, 성적 매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당신과 성적 행위를 하고 싶다’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섹시하다’는 형용 표현은 특히 최근 우리나라 사회에서, 단어의 실제 의미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 용례를 통해 알려지고 쓰이고 있는 케이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이제 불쾌한 시선이 아니라 기분 좋은 칭찬이 되기도 한다. 특히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을 수식하는 단어로 ‘섹시하다’는 수사는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어 이젠 별 감흥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직도 그 흔한 ‘섹시하다’는 말로 지칭 되었을 때, 그다지 기분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의 의미 차원을 각 개인이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이 말이 용례 사이에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떠한 단어를 사용할 때, 특히 그 근원과 의미가 분명히 정착되지 않은 신조어를 사용할 때는 사용하는 각 개인에 따라, 발화하는 그 ‘말’은 같아도 의도와 맥락에서 무척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꿀벅지’를 예로 들자면, ‘꿀벅지’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성인 사이트의 경우에, 논란 과정에서 밝혀진 어원을 굳이 참조하지 않더라도 그 말이 무척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최소한 그 당시에는 많은 여성들이 문제로 삼는 의미인 ‘핥아 먹고 싶은’ 혹은 그 이상의 성적 의미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말이 다양한 방식으로 퍼지게 된 이후, 우연히 그 단어를 접하게 된 불특정 다수의 일부는 단순히 예쁜 몸매를 표현하는 ‘신선한 말’이라고만 생각해, ‘몸매가 예쁘다’고 형용하는 말의 다른 표현 정도만 생각하고 그 단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을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전에 기재된 말이라도 개인이 느끼는 뉘앙스가 다른 법인데, 하물며 신조어의 쓰임과 그 뉘앙스는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뜻을 규정하기도 전에 무분별하게 사용되어버린 이 단어의 뉘앙스나 의미를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누구에게는 이 말이 수치스럽거나 위협적이고, 누구에게는 귀여운 애교 섞인 칭찬으로 들린다.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가 사용될 때 불쾌감을 느끼는 개인들의 생각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논란의 시작이 바로 이 단어가 공적 영역인 미디어에서 사용된 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가능성을 가진 언어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공 미디어에서 쓰는 것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고리타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미디어, 특히 신문에서는 가능한 정확하고 간결하며 정제된 언어로 기사를 써야 된다고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배웠기 때문인지, 이렇게 가볍게 떠돌다가 사라질 단어를 굳이 표제로 삼아 기사를 써대는 것이 우선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것이 어떤 여성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단어일 경우, 많은 분들이 얘기하셨듯이 미디어에서는 사용하기 전에 그런 최악의 가능성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일반 대중의 사적인 영역에서 이미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공적인 영역인 미디어에서 그런 ‘가능성’이 있는 단어를 쓰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며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태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은어나 비속어가 미디어에서 드러내놓고 쓰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다만 이러한 신조어 같은 경우에는 아직 독자들 사이의, 그리고 사회적으로 합의 된 단어의 쓰임과 제한에 대한 기준이 일치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사용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이 ‘꿀벅지’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동어반복이 될지도 모르지만 ‘뜻이 불분명하고 아직 합의되지 않은’ 단어를 무차별적으로 공적 영역에 사용해 수용자들에게 혼란을 준 미디어의 책임 없는 사용에 있다.

그렇다면 신문을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왜 비난 받을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러한 단어, ‘꿀벅지’같은 말을 사용했을까? 여기에는 또 무척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우선 ‘섹시’를 컨셉으로 ‘아이돌 가수’라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그것 자체가 엄청난 홍보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상품에 관한 새로운 단어가 널리 퍼지는 것을 무척 바랬을 것이다. ‘꿀벅지’ 논란 이후 유이가 소주 광고 모델로 전격 발탁되는 등, 최고의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기사 클릭 수로 수익을 올리는 최근의 신문사 수익모델에서는 자극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한 헤드라인이 주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제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 동시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러한 신조어들이 유행할 경우 수 많은 정보나 상품이 그 단어를 사용해 형용되거나 새롭게 초점을 맞춤으로서, 유행하는 것, 새로운 것, 관심 가는 것으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하며,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그 물건을 사고 싶도록, 그 정보를 읽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는 태생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되어 식상해진 ‘섹시하다’, ‘S라인’, ‘착한 몸매’, 그리고 이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그 외의 많은 단어들 대신, 소비자들의 뇌리에 기억되며 지갑을 열도록 할 획기적이고 신선한 표현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터넷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쓰이기 시작하는 신조어는 가장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 적당히 알려진 말이기에 아직 대다수에게는 신선하면서도, 눈길을 끌만큼 획기적이나 재미있지 않으면 재사용되지 않는 인터넷 사회의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고려하면 그 말이 가진 ‘재미’나 ‘신선함’은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다지 사회적 관심이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한 때 쏟아져 나왔던 ‘초식남’에 대한 많은 기사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그 발단이 누구든, 처음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단어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미디어이며, 거기에는 어떤 상업적인 목적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조어와 함께 생기는 새로운 유행, 스타일이 또 수 많은 소비 상품과 연결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 이런 신조어의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엣지 있다’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있다.

그렇기에 어쨌든 이번 ‘꿀벅지’ 논란이 성 상품화나 단어의 폭력성, 혹은 공공매체의 단어사용에 대해 고찰할 계기를 각 개인들에게 주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 승자는 ‘애프터스쿨’의 기획사와 당사자 유이이며 그 외 ‘꿀벅지가 되는 법’등의 기사를 양산하며 수익을 올린 미디어들, 그와 관련한 상품 소개나 PR문구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 마저 등장하는 세상이니, 신조어 하나가 나올 때마다 곧잘 나오는 신조어의 ‘한글 파괴’논란이니 하는 기사마저 요즘에는 색안경을 끼게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시대의 언어생활은 우리의 사고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단어마저 유행의 흐름에 따라 쓰고 버리는 상품처럼 취급되고 있다. 우리가 ‘공적’ 매체 이길 기대하는 각종 미디어들이 점차 ‘공적’이기 보다는 ‘자본친화’적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 새삼스럽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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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on50 2009/10/14 01:18 # 답글

    오우 글 멋지군용~~ 잘읽었어용ㅎㅎ
  • 2009/10/26 13:30 #

    오우~ 감사해용 ㅎㅎ
  • 2009/10/18 21:1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10/26 13:33 #

    헙...;; 그..그렇구나. 그런 신조어가 어떤 분들에게는 또 뭔가 젊은 감각?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모양이야 ;ㅅ; 그 말을 되게 귀엽고 신선한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가 낡고 뒤쳐진건지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뭔가 불편한건 어쩔 수 없나봐. 으음. 아무튼 요새 공부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미디어가 정말 위험한데, 그 위험수위에 많이 와있다는 느낌.; 근데 하느님보다 더 대단한 '자본'이 버티고 있으니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힘을 떨칠 수 있는게 없는거 같단 말이지. ㅠ_ㅠ 암튼 응원고마워요 언뉘 학교에 적응못하고 찌들어 가지만 힘내보겠스! 아잣!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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